2024년 1월, 효은 D+60일
, 여은 D+4년+60일
인 어느 날. 하룻동안 두 아이에게 느꼈던 행복감이 특별히 컸던 이 날을 기록해둔다.
Scene #1, 새벽
요 며칠 고맙게도 통잠 자주던 효은이가 오랜만에 새벽에 깼다. 감기기운이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코막힌 소리가 나오더라. 나잘 스프레이 뿌려주니 코딱지가 엄청 나왔다. 그거 빼주고 분유 먹이는데, 코 뚫리고 배불러서 기분좋은지 꺄하 소리도 지르고 방긋방긋 웃었다. 새벽에 몸은 피곤해도 이게 행복이다 싶었다. 이녀석이 내게 와주어서 정말 감사했다. 내가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되다니. 어제 AC2 RT에서 류지환님의 명언, “아이를 양육하는 건 본인을 재양육하는 것이다”도 떠올랐다.
Scene #2, 아침
오전에 효은이 기저귀를 갈려고 하니 여은이가 기저귀 통에 리필하는 걸 도와주겠다며, 박스에서 기저귀를 잔뜩 들고 왔다. 아내와 내가 놀라서 칭찬해주니 자기는 효은이 돌보는 게 엄청 좋단다. 그리고 “엄마아빠가 나 칭찬해줘서 기분 좋아.”라고 얘기했다. 어른에게는 보기 어려운, 이런 솔직한 반응을 들으니 칭찬해줄 맛이 났다. 그러고는 노트에 아야어여..를 열심히 적어서, “엄마가 칭찬해줘서 엄마에게 선물 줄게.” 라고 하더라. 아빠는 안주냐고 하니, “아빠는 나랑 놀거잖아. 아빠랑 나랑 노는 게 칭찬이지.”라고 했다. 허허 어떻게 알았니.
Scene #3, 점심
문화센터 데려가는 길에 다시 한번 여은이가 “엄마아빠가 칭찬해줘서 너무 좋아”라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조금 생각하고는 “내가 다음에 뭐 해야 할지 알 수 있잖아.”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넌 할 수 있어 라고 말해주세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세요 그럼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요 짜증나고 힘든일도 신나게 할 수 있는 꿈이 마음이 자라는 따뜻한 말 넌 할 수 있어
기특했지만 한편으로 괜한 걱정도 돼서, “엄마아빠가 칭찬 안해줘도, 여은이가 하고 싶은 일 해도 돼. 여은이는 다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었는데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계속 노래만 부르더라. 뭐 또 말해주면 되겠지.
Scene #4, 오후
여은이가 나이도 찼고, 요즘 그림에 관심도 많아서 첫 가족회의를 했다. 1월에 행복했던 일을 각자 이야기하며 그려보고 발표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오늘 문화센터 미술 시간에 만든 꼬마눈사람도 가족이라며, 같이 그려야 한다고 하더라.
오히려 우리는 바로 오늘이나 며칠 전 일로 이야기하고 그렸는데, 여은이는 오늘 일 뿐 아니라 몇 주 된 일도 잘 기억하며 자세히 하나하나 칸 나눠서 그렸다.
- 눈사람 만든 일
- 여은이의 최애 음식인 부드러운 돈까스 먹으며 나랑 시합했던 일
- 눈사람의 당근 코가 떨어져 내가 ‘내 코, 내 코 어딨어!’ 연기했던 일
- 할머니 집에 가서 나랑 밥먹기 시합하고 자기가 이겨서 소파에서 방방 뛰었던 일
- 우리집에 있는 두 종류 스탠드를 가지고 놀았던 일
- 엄마가 그려준 피자로 함께 놀았던 일
여은이가 너무나 즐거워하며 그리는 모습을 보니 더할나위 없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