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비라는 협력형 보드게임을 좋아한다. 몇년째 보드게임 좋아하는 친구 셋과 함께 모이면 마무리로 한두판 즐기고 헤어지곤 하는 스테디셀러다. 어제 회사 팀원과 1:1을 하면서도 하나비 얘기를 꺼냈는데, 하나비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모토가 조직 내에서 신뢰자원을 확산하는 훌륭한 도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나비에서는 본인 앞에 놓인 카드의 정보는 알 수 없고 친구의 카드만 알 수 있다. ‘토큰’이라는 자원을 써서 친구에게 힌트를 알려주고, 각자 본인이 가진 정보와 힌트를 취합하여 효과가 확실하지 않은 행동을 취한다. 토큰 자원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자원 하나로 정보 하나만을 얻을 수 있다면 오래 생존하기 어렵다. 언제나 최소 1타 2피 이상을 노려야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 이 때 ‘얼마나 효과적으로 힌트를 줄 수 있는가’에는 게임 참여자들 사이의 상호 신뢰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려운 힌트를 받으면 대략 이런 생각을 파바박 하게 된다. ‘지금 보드 상황과 자원 상황을 비롯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조합하면 지금 나에게 이런 정보를 알려줘야 확실한데, 대신 요런 정보를 줬다. 요렇게 알려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는, 요렇게 알려줌으로써 얻는 위험 대비 이득이 훨씬 클 것이다. 그러니까… 에잇!’
힌트를 받지 않은 사람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상황을 보면 나에게 알려줘야 맞는데 안 알려준다? 그러면 나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카드가 없다는 뜻일 수도 있고 저 친구가 더 시급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내게 중요한 게 있었다면 당연히 알려줬겠지. 한번 지켜보자.’
이런 상호 신뢰는 다음 문장으로 요약된다. 친구가 머뭇거릴 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곧잘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너를 믿는 나를 믿는 너를 믿어라
(천원돌파 그렌라간에 이와 비슷한 대사가 있었는지는 몰랐다)
좀 더 풀어쓰면 이런 식이다. ‘나는 내 힌트가 무슨 뜻인지 네가 알 수 있을거라 믿어. 너도, 내가 너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걸 믿잖아? 거기에 걸고 행동해봐.’ 물론 상대의 의도보다 더한 추측을 하거나, 상황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다를 때는 삑사리가 나곤 한다. 그래도 그 실패 자체가 새로운 정보가 되고, 서로에 대한 이해 수준을 조정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괜찮다.
하나비에서 배운 상호 신뢰와 신뢰의 위임이 조직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어제 1:1에서 내가 했던 말을 조금 각색해서 남겨둔다.
“A님이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더라도, 만약 A님이 저를 신뢰한다면 저는 A님을 믿고 있으니, A님을 믿는 저를 믿는 A님을 믿으세요. 마찬가지로 A님이 B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데 제가 B님을 믿는다면 저에게 신뢰를 위임하세요. A님이 믿는 제가 B님을 믿으니까 A님도 B님을 믿어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무엇보다도, 저는 뭔가 잘못되더라도 우리 팀이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자칫하면 위임이 방임으로 변할 수 있으니, 우리가 누군가를 왜 신뢰하고 왜 신뢰하지 않는지 솔직하게 나누는 게 전제되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