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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활 연구 프로젝트 기록: 밤에 오줌 싸는 내 아이 괜찮은걸까?

태그
연구웰빙육아
최종 편집
Aug 17, 2023 2:03 AM
발행일
June 1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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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stdy.blog로 이전했습니다. 새 블로그에 어떤 글들이 올라올지 궁금하시면 Upcoming Posts를 참고해주세요. 🙂

나에게는 만 42개월 된 딸아이가 있다. 대략 한두달 전부터 아이가 밤에 오줌을 자주 싸기 시작했다. 심할 때는 5일 연속 싼 적도 있었다. 자기 전에 음료 안 마시고, 자기 전에 오줌 누게 하는 정도는 항상 하는데도 그랬다. 예전에는 오히려 너무 오랫동안 오줌을 누지 않아서 (심할 때는 자고 일어나서 오후가 될 때까지 한 번도 안 눈 적도 있음) 걱정이었다. 이것 때문에 오줌을 조절하는 능력이 확 떨어진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낮에는 오줌을 지리지 않고, 오줌 마렵다고 잘 말한다. 그리고 낮에 오줌 누는 빈도는 전보다 확실히 늘었다.

밤에 오줌 싼 이불 치우고, 갈아입히고, 빨래하는 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2-3주 전부터는 기저귀를 다시 입히기 시작했다. 기저귀 입히니 며칠동안 신기하게 오줌을 싸지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다시 매일같이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아내가 그럴거면 다시 팬티 입히고 교육 잘 하자고 해서 다시 팬티를 입히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오줌을 쌌다. 한 번은 밤에 목욕하면서 오줌 누고, 또 새벽에 오줌마렵다고 깨서 오줌 눴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보니 또 오줌을 쌌더라.

(다행히 아이는 크게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 같지만) 부모로서 스트레스가 꽤 심하다. 새벽에 갑자기 깨서 오줌쌌나 확인해보고 다시 잠든 적도 종종 있다. 오줌의 뒷처리도 힘들지만 아이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 나는 그냥 스트레스 없이 잠자기 위해 기저귀를 다시 채우고 싶지만, 아내는 어떻게든 팬티 입히고 교육시키자는 입장이다.

나는 내 아이의 현재 나이 대비 상태가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지, 그냥 기저귀 채우고 더 클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건지, 가정에서 교육이나 조치를 다르게 취해야 하는 건지 등 진단을 근거 있게 내리고 싶다. 그걸 통해 다음 액션을 취하고 싶다.

그런데 바로 병원에 데려가고 싶지는 않다. 병원에 가면 가족 모두에게 시간과 에너지가 무척 많이 들 것이고, 무언가 진단을 듣고 행동하더라도 여전히 확신 수준이 높지 않은 상태에서 행동할 것 같다. 병원에 갈땐 가더라도 그 전에 스스로 연구를 좀 해보자.

행동계획

야뇨증(bed-wetting)을 다룬, 인용수가 높은 논문 몇 편을 Google Scholar에서 찾아 읽고 컨셉 맵으로 정리한다. Focus Question은 두 가지.

  • 내 아이의 야뇨 증상이 월령 대비 정상 발달 범주 내에 있는지 진단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 부모로서 아이의 야뇨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권장되는 (야뇨증의 심각성 수준에 맞는) 행동은 무엇인가?

위 지식을 기초로 아이의 야뇨증 심각 수준을 셀프 진단 후 그에 맞게 행동한다. 대략 이렇게 되지 않을까.

  • 정상 범주 내에 있다면 → 그냥 기저귀 채우고, 일상적으로 권장되는 행동 정도만 하자고 아내를 설득한다.
  • 심각하다면 → 아내와 상의 후 병원에 찾아간다.
  • 그 사이라면 → 아직 모르겠다. 컨셉 맵 그린 다음에 생각해보자.

기대하는 결과

Output: 산출물

  • 두 가지 Focus Question에 대한 컨셉 맵
  • 야뇨증에 대한 지식을 기초로 한 아이의 야뇨증 심각 수준 진단 결과
  • 내 아이의 야뇨증 심각 수준에 맞는 행동지침

Outcome: 중단기적 성과

  • 내 아이의 야뇨증 심각 수준을 이해한다.
  • 야뇨증 심각 수준에 맞는 행동지침을 찾아서 이행한다.
  • 나와 아내가 야뇨증과 관련된 육아/훈육/교육방식에 대해 말다툼하는 일이 적어진다.
  • 아이의 야뇨증이 완화된다. 그에 따라 나와 아내가 아이의 오줌 걱정하느라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일이 적어지며, 새벽 오줌 뒷처리 및 잦은 빨래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적어진다.

Impact: 장기적 효과

  • 의문이 있을 때 근거 있는 지식을 습득하는 기회로 삼는 연습을 한다. 이를 통해 내 안에서 확신수준이 높은 지식의 지평을 넓힌다.
  • 논문을 read less 해서 컨셉 맵으로 핵심 뽑아내는 연습을 한다. 컨셉 맵이 더 내게 익숙하고 편안한 도구가 된다. 공부할 때의 부담이 적어진다.
  • 근거 있는 지식을 기반으로 아내와 의사소통하고 의사결정하는 연습을 한다. 가족 내에서 불필요한 의견 충돌이 적어진다.

Premortem

계획대로 행동했지만 기대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일까?

  • 논문을 읽고 정리하는 데 너무 오래 걸려 그동안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아내와 싸운다.
  • 논문을 읽었지만 원하는 진단 방식이나 행동지침을 얻지 못한다.
  • 진단과 행동지침을 얻었지만 아내를 설득하지 못한다.
  • 행동지침대로 했지만 야뇨증이 완화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 나의 계획에 대해 아내에게 처음부터 잘 말하고, 이 방식이 괜찮은지 상의한다.
  • 논문 정리를 너무 오랫동안 끌지 말고, 정리 기한을 명확히 정한다(e.g., 3일). 그 기간동안 적극적으로 논문을 read less 하고, 아내에게는 며칠만 기저귀 채운 채 기다려달라고 한다.
  • 진단 방식과 행동 지침을 다룬 논문이 아니라면 인용수가 높아도 빠르게 패스한다. 더 적절한 논문을 찾는 방식에 대해 AC2에 도움을 청한다.
  • 행동지침은 ‘얼마나 시행하면 일반적으로 얼마나 완화되는가’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는 행동과 아이의 야뇨증 수준을 잘 기록하고, “언제까지 어느 수준으로 완화되지 않으면 병원에 데려간다” 같은 후속 조치에 대해서도 아내와 상의 후 결정한다.

실행 기록 @June 17, 2023

구글 학술검색에서 bed-wetting으로 검색. 상위 논문 중 제목이 맘에 들고 좀 더 내 아이의 월령대에 맞는 논문을 5개 고른다.

아내에게 이 노션 페이지 링크와 함께 이렇게 해보려고 한다고 메시지 보내니, 진지하게 고민해줘서 고맙다는 연락이 왔다. 아내는 내가 공부해서 알려주기를 바라는 듯하다.

AC2에서 이 과정을 공유하니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한국인 특성에 맞게 알아보는 것도 좋지 않겠냐는 말이 들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마침 영어 논문 몇 개를 훑어봤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진도가 빠르게 안 나가고, 내게 중요한 정보가 정말 맞는지 조금 의심이 들던 차였다.

구글 학술검색에서 ‘아뇨증’으로 검색해서, 야뇨증 치료의 현재라는 제목의 야뇨증 특집이 대한의사협회 저널(JKMA, Journal of the Korean Medical Association)에 2017년 10월부로 실린 것을 찾았다. 한국에서는 유의미한 저널이니 기대했는데 역시 내용이 상당히 좋았다. 특집에 실린 논문 3개를 더 훑어봤는데 짧으면서도 내게 필요한 정보는 대부분 들어있었다. 따라서 이 특집을 중심으로 컨셉 맵을 작성하기로 한다.

실행 기록 @June 18, 2023

90분 정도 걸려서 컨셉 맵 그리기를 완료했다. 원했던 아웃풋을 얻었는가?

두 가지 Focus Question에 대한 컨셉 맵 ✅

결과

야뇨증에 대한 지식을 기초로 한 아이의 야뇨증 심각 수준 진단 결과 ✅

  • 만 5세 이상, 주 2회 이상, 3개월 이상 지속될 때 야뇨증이라고 진단한다.
  • 만 5세 기준으로 10-15%는 야뇨증이 있으며, 우리 아이는 만 60개월이 되려면 1년 이상 남았기 때문에 아직 야뇨증 진단을 내릴 수 없다.
  • 주간 배뇨 증상이 동반된다면 더 심각한 건데, 우리 아이는 그렇지 않다.
  • 그러나 심할 때는 거의 매일 하기 때문에 행동치료 지침은 따르면 좋겠다.

내 아이의 야뇨증 심각 수준에 맞는 행동치료 지침 ✅

  • 아이에게 야뇨증의 원인과 배뇨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우리가 야뇨증이 흔한 증상이며 아이 잘못이 아님을 이해하기.
  • 야뇨일기의 일환으로 보상 요법 도입: 야뇨가 없었거나,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면 달력에 별 스티커 붙이기.
  • 음식물 섭취 및 배뇨 습관 개선 가이드라인 따르기
    • 주간에는 규칙적으로 배뇨하고, 소변을 참는 행위는 피하며, 잠자기 직전에는 꼭 배뇨를 하게 한다.
    • 자기 전에는 대뇌를 자극하는 조명, 컴퓨터 게임, 텔레비전, 음악 등은 멜라토닌의 일중 변화나 수면양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조절하는 것이 좋다.
    • 저녁식사는 가능한 이른 시간에 하고, 식사시간이 늦으면 염분이 높은 국물 혹은 매운 음식은 최소한으로 한다.
    • 취침 2-3시간 전에는 수분 종류 음식 및 과일 섭취를 제한한다.
    • 아침, 점심, 이른 오후에는 자유롭게 수분섭취를 충분히 하게 하되, 저녁에는 갈증을 풀 수 있을 정도만 섭취하게 하고, 특히 유제품은 저녁에 피한다.
  • 효과 없는 방법을 숙지하여 피하기
    • 소변을 오랫동안 참는 훈련을 통해 방광 용적을 늘리는 방법은 소아가 소변 참기 자체가 쉽지 않으며, 용적이 늘더라도 야뇨를 줄이는 데는 큰 효과가 없고, 인위적 소변 참기는 배뇨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 기저귀를 채우면 옷이 젖지 않아 편한 환경이 조성되어 동기부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 밤에 아이를 안고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게 하면 각성 없이 배뇨를 하게 되고, 방광이 충만되는 감각을 배울 기회가 박탈된다.

아웃풋을 토대로 아웃컴 얻기 위한 행동계획

  • 내 아이의 야뇨증 심각 수준을 이해한다. ✅
    • 일단은 걱정 안 해도 된다.
  • 야뇨증 심각 수준에 맞는 행동지침을 찾아서 이행한다. ✅ 
    • 야뇨 경보기, 그리고 6세 이상부터 권장되는 약물치료는 아직 할 필요 없다. 행동 지침 정도만 따라보자.
  • 나와 아내가 야뇨증과 관련된 육아/훈육/교육방식에 대해 말다툼하는 일이 적어진다. ✅
    • 좋은 행동지침을 얻었기 때문에 (그리고 애초에 아내는 나만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서) 이건 달성됐다고 본다.
  • 아이의 야뇨증이 완화된다. 그에 따라 나와 아내가 아이의 오줌 걱정하느라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일이 적어지며, 새벽 오줌 뒷처리 및 잦은 빨래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적어진다.
    • 이건 앞으로 행동지침을 따라보면서 관찰해보자.

회고

  • 단순히 인터넷을 검색해보거나 병원에 바로 찾아가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의문을 해결하고, 행동지침을 찾아서 기분이 좋다. 이 연구의 설계 과정도 만족스러웠고, 실제로 걸린 시간도 만 하루 이하였다. 근거 기반으로 아내와 대화하는 것도 아주 경험이 좋았다.
  • 야뇨증에 대해 일반인 중에서는 꽤 높은 수준의 전문 지식을 얻었다. 주변에 야뇨증으로 고민하는 부모가 있을 때 좋은 도움을 줄 수 있겠다.
  • 컨셉 맵은 이렇게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서는 정리해서 기억하거나 새로운 통찰을 만들기보다는, 그걸 보면서 다른 글을 쓰거나 남에게 설명하는 기초자료가 되기에 좋아 보인다. 굳이 리팩토링을 여러 번 거치지는 않았다.
  • 프리모르템이 아주 효과적이었다. 아내와 먼저 얘기하고 시작해서 충분한 지지를 얻어 시행할 수 있었다. 논문 탐색 시간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되었으며 AC2에서도 도움을 얻었다.
  • 좋은 논문이 있을 때 빠르게 정리하는 연습은 약간 된 것 같지만, 좋은 논문을 찾는 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다. 더 수련이 필요하다. 내게 용어가 익숙지 않을 때는 한글로 된 자료를 먼저 읽고 그 레퍼런스를 따라가는 것도 좋은 전략의 하나로 보인다. 특히 이번처럼 인종/문화적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을 법한 주제라면 더욱 그렇다.

@August 13, 2023 업데이트

6월 18일부터 행동계획대로 실천했다. 저녁식사를 조금 더 이르게 하고, 잠들기 몇시간 전부터는 음료수 안 먹이고, 자기 전에는 오줌이 마렵지 않아도 꼭 화장실에 가서 열 셀동안 앉아있게 했다. 가서 오줌을 누지 않는다면, ‘밤에 오줌 마려우면 어떻게 한다고 했지?’ → ‘엄마아빠에게 달려와서 오줌마려워요 얘기해요’ 이렇게 가르쳤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밤중에 오줌을 안 쌌다면 달력에 별을 그려줬다. 20개 때 처음 선물을 사줬고, 50개 때도 하나 사줬다. 지금은 60개. 아래는 7월 말에 찍은 달력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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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양치 잘 했을때라거나 저녁밥 남기지 않고 잘 먹었다거나 해서 별을 2개씩 받은 날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오줌 안 싼 걸로 대부분 채웠다.

여은이는 밤중에 각성은 잘 안 돼서, 자기 전에 오줌을 안 싸면 높은 확률로 밤에 못 일어나고 싸긴 하더라. 하지만 요즘은 자기 전에 오줌 누러 가는 습관이 완전히 정착돼서, 최근에는 싼 적이 거의 없다. 한때 일주일에 5번도 쌌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실제 아이의 문제도 개선되었고, 나에게는 근거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행동하는 연습도 잘 되어서 무척 만족스러운 생활 연구였다. 다음은 여은이의 저체중 문제(동일 월령 대비 0.7%)를 연구할 차례다. 커밍 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