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건, 말 그 자체가 아닐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들어주는 것은 그 사람의 ‘때’에, 그 사람의 ‘방식’으로 들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돕고자 하는 일이, 또 진정 듣고 싶은 말이, 그 사람 안에서 흘러나오고, 현실이 됩니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따라가며, 반응하기. wait-wait-follow-respond. 이것은 진정 누군가를 위하는 방법인 동시에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아내는 여은이를 임신했던 시기부터 그림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림책 태교 수업을 들어서였을 수도 있고 문지애 아나운서의 애TV에서 그림책 관련 컨텐츠를 보면서 그랬을수도 있다. 아무튼 그 이후로 우리는 종종 어른에게도 여운이 남는 그림책을 가끔 함께 보곤 했다.
퇴근하고 돌아오니, 오랜만에 아내가 그림책 하나를 들이밀며 어서 읽어보라고 했다. 코리 도어펠드의 <가만히 들어주었어>(원제: The Rabbit Listened)라는 책이었다.
읽어보니 과연 추천할 만했다. 그림도 귀엽고(주인공이 왠지 여은이를 닮았다) 내용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위 인용구는 역자 신혜은 님의 글에서 발췌한 것인데 상담, 코칭, 멘토링, 또는 누군가를 도와주는 행위를 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속에 새길 만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기다리고, 기다리고”가 아주 인상적이다.
수년 전 AC2에서 코칭에 대해 배웠었다. ‘코치가 피코치의 문제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피코치의 이야기를 잘 듣고 질문을 적절히 던짐으로써 얼마든지 도움을 줄 수 있다, 코치가 그 문제의 전문가라면 오히려 본인 경험에 빗대어 함부로 해결책을 제시해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기억난다.
그러나 배우면 뭘 하나. 나는 기분이 상했을 때 대개 바로바로 이야기하고 푸는 형태의 인간이기 때문에 기다려주는 걸 참 못 한다. 심지어 기다리고, 기다리라니. 주변 사람들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일 때 그들이 지금 ‘말하고 싶지 않은 상태’인 걸 잘 깨닫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왜 그러냐고 재촉하곤 했다. 그들이 마침내 이야기를 꺼내더라도 남편으로써, 아빠로써, 팀 리드로써 ‘피드백’이라는 명목으로, 듣다 말고 내 얘기를 해버렸다. 반성한다.
이 책은 원치 않는 타이밍에 원치 않는 도움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었다. 여은이가 기분 상해 울고 있을 때 이유를 묻기보다는 곁에서 체온을 전해주며 기다리고, 기다려야겠다. 가정과 팀의 평화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