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 못하거나 잘 몰라서 ROI는 낮지만 가치는 높은 그런 분야에서, 적절한 전문가를 찾아서 그의 시간을 사고자 할 때, 역량 있고 신뢰할 만한 전문가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이사나 청소 같은 분야는 상대적으로 기회비용이 낮은데 의료, 법무, 투자 같은 쪽은 실패에 대한 기회비용이 상당히 크다.
당연히 어떤 분야냐에 따라 달라지는 무언가가 있겠지만, 분명 어떤 분야이든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통찰이 있을 것이라는 감은 있는데… 아직 감만 있다. 생각을 이리저리 늘어놔보면 뭔가 패턴이 보이려나. 한번 시도해보자.
우선 ‘구인’이란 행위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하는 것 같다.
- 직무가 비교적 잘 정립되어 있는 분야라면 수요와 비용 수준도 어느정도 표준화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전문가 집단이 회사를 꾸리거나, 프리랜서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서비스 따위가 존재할 것이다. 그곳에서 소개된 전문가 중 고른다.
- 내가 원하는 전문성을 정의하고, 그런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속해있을 것 같은 커뮤니티에서 공개적으로 구인한다. 지인에게 소개받는 것 포함.
내가 풀고자 하는 문제가 복잡할수록, 또는 내가 그 문제에 대해 아는 바가 적을수록(뭘 모르는지 모르는 상태일수록) 1보다는 2에 가까워질 것이다. 내가 문제 정의를 제대로 못할 수도 있고, 전문가 집단이 모인 공간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리고 2에 가까울수록 진짜 전문가를 내가 알아보기 어려울 것 같고, 진짜 전문가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실력 차이가 뚜렷할 것 같다는 느낌이 있다.
1이든 2이든 간에, 결국 전문가의 직무 전문성을 어떻게 일을 맡기기 전에/또는 일 도중에 적은 비용(시간/돈/에너지)으로 알아볼 것인가 하는 문제로 치환한다면, 결국 기본 원칙은 비슷하겠다.
- 사전에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되, 그것으로 단숨에 완벽한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은 버린다.
- 내가 잘 모르는 일일수록, 그리고 중요한 일일수록 초반 몇 회나 몇 시간 등은 해당 분야에 대한 나의 눈을 기르는 학습 및 실험 기회로 삼는다. 여기에 드는 돈과 시간과 에너지는 아까워하지 않는다. 언제 사전체험을 중단하고 본게임으로 가는게 좋을지 기준을 세우는 것 자체도 여러 전문가를 거치면서 학습해나갈 수 있다.
- ‘사전 체험 및 도중 중단’이라는 프로세스가 정립되지 않은 분야라도, 또는 내게 그러한 권한이 일반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 방식으로 해보도록 시도할 수는 있다.
일단은 그럴듯한데, 그러면 이 원칙을 지금 나에게도 적용해볼 수 있나?
내가 지금 구하고 싶은 전문가는 내 자산을 대신 굴려줄 펀드, 전문가, 전문가 집단, 또는 알고리즘이다.
펀드 매니저나 전업투자자의 전문성을 어떻게 ‘미리’ 판단할 수 있을까? 나는 일단 투자에 대해 문외한에 가깝다. 미국 인덱스 펀드 사라, 자주 팔지 마라, 분산투자하라 정도밖에 모른다.
- 투자라는 분야는 거시적인 흐름을 너무 타는 것 같다. 즉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담보하지 않고, 과거의 성공/실패에서 학습하기가 너무 어려워 보인다.
- 그래서 더더욱 과거 수익률만으로는 누군가의 역량을 판단하기가 어렵다. 해당 기간 운용한 자금의 규모, 그리고 당시 로컬/글로벌 경제 상황도 알아야 한다. 또 뭐가 있을까.
- 애초에 ‘투자’에서의 성공이란 무엇인가. 원하는 기간동안 원하는 수익률/이익금을 얻으면 성공인가?
- 그러면 투자를 잘 한다는 건 뭘까. 계속해서 원하는 수준으로 수익률/이익금이 나오는 것 자체가 가능한가? 아닐 것 같고, 그러면 손실시 적은 금액으로 잃는 것도 중요한 역량이려나.
정리해보니 진짜 몰라도 엄청 모르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라면 내가 누군가를 일단 골라서 자산을 맡기더라도 내가 아직 적절한 가설도 없고, 초반에 학습해서 중단하거나 할 기준도 세우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내가 뭘 해볼 수 있을까. 학습을 위한 학습이 필요한 상황이다.
- 여러 투자 전문가를 만나서 ‘좋은 투자 전문가의 공통점’에 대해서 들어보거나, 이 때 얻은 키워드로 논문을 찾아본다거나 하는 식으로 연구하기.
- 분야를 막론하고 전문가라면 공통적으로 가진 특징이 있을 것이고, 투자 전문가도 그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면 내가 아는 일반적인 전문가의 특징을 보이는가? 를 관찰함으로써 이 사람이 투자 전문가인지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일반적인 전문가의 특징’에 대해서는 논문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 키워드로 찾으면 될지 아직 감이 잘 안 잡힌다.
- 어쩌면 개발 전문가에 대한 논문을 그대로 가져와도 될 것 같긴 한데, 그런 역량이나 경험이 있는 사람인지를 짧은 시간에 관찰하고 파악하는 건 또 다른 종류의 문제가 되겠다.
흠.... 그러면 사람이 아닌 로보 어드바이저를 이용하거나 프로그램 매매를 한다고 할 때, 이 프로그램의 전문성(?)은 어떻게 측정해야 하지? 이건 더 감이 안 온다. 이 부분도 전문가에게 물어볼 수 있겠다.
그러면 추가로, ‘일반적인 전문가의 특징’에 대한 짧은 연구를 해본다.
이것저것 검색해보다가 제목이 매력적인 글 하나를 찾았다. HBR이라서 소스도 괜찮아 보인다.
- https://hbr.org/2014/12/find-the-right-expert-for-any-problem
- 많은 곳에 적용해볼 수 있는 메타 패턴으로 보인다. 써먹어보도록 하자.
아래는 간단한 요약.
유사한 패턴을 보이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분야의 있는 사람들끼리의 전문성을 활용하면 굉장히 창의적인 문제 해결법이 튀어나온다는 건 점점 더 많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알려지고 있으나, 각 분야에서 그런 전문가를 찾는 것은 굉장히 어려워 보인다.
이 문제에 ‘피라미드 탐색법’을 이용하면 효과적으로 전문가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피라미드 탐색법은 혁신적 문제의 창의적 해결책을 유사한 분야를 이용해서 찾는 것뿐만 아니라, 건초에서 바늘 찾기(거대하고 잘 정의되지 않은 탐색 범위에서 귀한 지식을 찾아내기)에도 굉장히 효과적이다.
피라미드 탐색법은 탐색 과정에서의 학습을 통해 최초의 질문을 개선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
피라미드 탐색법의 기본 아이디어는 이렇다:
- 특정 분야에 지식이나 관심을 가진 누군가를 찾는다
- 그 사람에게 본인보다 그 분야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 또는 그런 사람을 아는 사람을 소개받는다.
- 소개받은 사람에게 찾아가고, 반복한다. 특정 분야의 정상, 즉 피라미드의 끝에 도달할 때까지.
- 정상에 있는 자들은, 다른 유사하지만 떨어져 있는 분야의 전문가와 교류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연구에 따르면 피라미드 탐색을 할 때 조심스럽고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 여러 잠재적 유사 분야에서 시작점을 브레인스토밍한다. 이 때, 정확한 타겟 분야에만 머물러있으면 안 된다. 그 분야의 바깥에 있는 인터뷰이들이 유사 분야의 전문가를 소개해줄 가능성이 높다.
- 성공적인 피라미드 탐색의 원칙을 이해하는, 경험 많은 인터뷰어로 팀을 구성하라. 인터뷰이가 자신의 지식들을 연결하게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 각 인터뷰별로 당신이 획득한 지식의 수준을 측정하라. 획득한 지식이 적다면 잘못된 길에 서있는 것이고, 연속적으로 많은 지식을 얻었는데 갑자기 다음 전문가를 소개받기 어렵다면, 아마 정상에 도달한 것이다. 또는, 같은 전문가의 이름을 여러 번 들었다면 그 사람이 정상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