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카네만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기 시작했다. 원래는 <결정적 순간의 대화>를 다 읽었으니 <결정적 순간의 대면>을 읽으려고 했는데, 리디북스에 없길래 다른 책을 찾았다.
‘직관과 편향’은 내가 올해 특히 관심있어하는 주제이며, 김창준님이 카네만을 언급했던 것도 기억이 났다. 창준님이 수십년 동안 전문가가 안되는 비결이라는 글에서 ‘직관적 전문성의 조건’이라는 논문을 소개했는데, 이 논문은 (인간의 오류에 관심이 많은) 발견법과 편향(Heuristics and Bias) 학파의 수장인 대니얼 카네만과 (인간의 대단함에 관심이 많은) 자연주의 의사결정론(Naturalistic Decision Making) 학파의 수장인 게리 클라인이 공동연구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고 했다.
<생각에 관한 생각>에도 이 내용이 나온다. 책의 서문에서 개리 클라인과의 공동연구 얘기가 나오길래 책의 어디에서 그 얘기가 나오는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져서 거기만 먼저 읽었다. 과연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간단히 핵심만 요약해본다. (내맘대로 해석해서 조금 바꾼 부분도 있다)
요약하면서 보니 역시 CTA(Cognitive Task Analysis), 또는 전문가 인터뷰와 부합되는 점이 분명하게 있다. 이 사람이 특정 영역의 전문가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재료로도 삼을 수 있겠다. 작년 초에 비슷한 주제로 썼던 글과 비교하면 나의 ‘전문성에 대한 전문성’이 발전했음이 느껴져서 기분좋다.
시스템 1과 시스템 2
인간의 의식에는 직관적이며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 1’과 의식적으로 사고하여 결정하는 ‘시스템 2’가 존재하며, 이들은 항상 서로 협력하긴 하지만 또한 서로 다른 상황에서 활성화된다.
직관은 재인이다
개리 클라인은 전문가의 의사결정이 재인 기반 결정(RPD: Recognition-Primed Decision) 모델을 따른다고 말했다. 여기서 재인은 어떤 대상을 과거에 보았거나 접촉했던 경험을 기억해내는 걸 뜻한다.
전문가의 의사결정에는 시스템 1과 2가 모두 개입한다. 현재 주어진 신호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패턴이 연상되면서 임시 계획이 떠오른다. 여기까지가 시스템 1이고, 시스템 2는 그 계획이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의식적으로 점검한다. 이는 허버트 사이먼이 정의내린 ‘직관’과 일맥상통한다.
상황에 신호가 숨어있다. 전문가는 이 신호를 이용해 기억에 저장된 정보에 접근하고, 그 정보에서 답을 얻는다. 직관은 재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직관을 발휘한다(슬리퍼 소리만 듣고도 어떤 친구인지 안다거나). 이는 전문가의 직관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사고 체계가 원래 이렇다는 뜻이다.
언제 직관을 신뢰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어떤 믿음이 인지적으로 편안하고 논리적으로 일관되면 확신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연상 체계는 의심을 억누르고, 주도적 스토리와 들어맞는 정보를 떠올리는 데 특화되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직관을 확신한다고 해서 직관이 타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면 언제 직관적 판단에 전문성이 담기고, 언제 착각에 불과할까?
전문성을 다음 두 가지 조건에서 획득했다면 직관을 믿을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 발휘된 직관에 의한 확신은 믿지 않는 게 낫다.
- 주변 환경이 규칙적이어서 예측 가능할 때
- 오랜 연습으로 규칙성을 익힐 수 있을 때
피드백과 실행
전문가가 직관적 전문성을 개발할 가능성이 있는지는 충분한 실행 기회, 피드백의 질, 피드백의 속도에 좌우된다.
- 운전할 때 얼마나 브레이크를 밟아야 커브를 잘 돌 수 있는가 → 실행 기회 많고, 커브를 돌 때마다 즉각적이고 분명한 피드백을 받음
- 항만에서 대형 선박을 수로로 안내하는 도선사 → 처하는 상황은 규칙적이지만 행동 후 결과까지 시간이 오래 걸림
이는 전문가의 전문성이 특정 영역에서만 잘 발휘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전문가가 본인의 전문성의 한계를 모를 수도 있다.
- 심리치료사
- 자기 말에 환자가 즉각 반응하는 걸 목격할 수 있음 → 환자의 분노를 누그러뜨러기나 자신감을 불어넣는 단어를 찾는 직관력은 개발됨
- 환자의 장기적 결과를 피드백 받는 일은 드물거나, 지체되거나, 없음 → 여러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보편적 처치를 찾는 능력은 개발하기 어려움
- 환자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는 직감으로 알아낼 수 있고 거의 맞겠지만, 다음 해에 얼마나 좋아질지는 예측할 수 없음
- 의사
- 마취 전문의는 마취 효과를 금방 확인할 수 있음
- 방사선 전문의는 자기가 내린 진단의 정확도와 자기가 발견 못 한 병리 현상에 대한 정보를 거의 얻지 못함
- 금융 전문가
- 금융 거래의 많은 측면에서는 피드백을 받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
- 주식 선별은 할 수 없음
직관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질문과 생각들
- 그는 이 일에 어느 정도 전문성이 있는가? 실행 경험은 얼마나 되는가?
- 그는 정말로 배울 기회가 있었는가? 본인 판단에 대해 얼마나 빠르고 명확하게 피드백을 받았는가?
- 그는 정말로 통계와 반대되는 직관을 정당화할 정도로 이 사람이 처한 상황에 규칙성이 있다고 믿는가?
- 그는 자기 결정을 확신하지만, 주관적 확신은 판단의 정확도를 가늠하는 지표가 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