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2023년 마지막 날이다. 하반기 목표 설계할 때 “계획 짜는 행위가 계획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문장으로 만들어진 계획에 집착하지 말고 의미를 찾으며 계속 조정해나가자.” 라고 적었는데, ‘계획에 집착’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조정’도 자주 하지 않았던 게 아쉽다. 그래도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며 많은 것을 이뤘다. 하반기에 내 삶의 밀도를 높여준 경험을 카테고리별로 정리했다.
2023년 하반기의 주요 경험
가족
둘째 효은이가 태어나 다둥이 아빠가 됐다. 유도분만도 안 했는데 첫째 여은이와 생일이 같다. 정확히 만 4년 차이라 윤년까지도 같아서, ‘효은이가 이 때 여은이는 뭐 했지?’ 싶으면 그냥 그날 날짜에서 4년을 빼면 된다. 이런 경우를 주변에서 본 적은 없어서 무척 신기하다.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을 마지막 휴식으로 삼으려 했지만 예상보다 할 일이 엄청 많았다. 당근에서 중고거래도 많이 했고 집 구조도 바꿨고, 처리할 행정 절차도 여럿이었다. 이제 태어난지 40일 됐는데, 각오는 했었지만 역시나 육체적으로 아주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직 관리사님이 돌봐주고 계신데도 그러하다. ‘아 이렇게 등이랑 허리가 아팠었지’ 하며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고는 있다. 사실 효은이 돌보는 거 자체는 우리가 새벽에 잠을 깊이 못 자는 거 빼고는 몸이 좀 힘든 정도인데, 가끔 혼자서 여은이랑 둘을 함께 케어해야 할 때가 아주 헬이다. 여은이가 그래도 터울이 꽤 되어서 그나마 수월한 거겠지. 몇 번이고 생각하는 거지만 3형제는 말할 것도 없고 두 살 이하 터울 자녀를 돌보는 분들이 어떻게 해내셨는지 모르겠다. 존경스럽다.
아내와 내가 잠깐이라도 편해지고자 여은이와 함께 토요일마다 문화센터에 가기 시작했다. 발레와 영어미술인데 여은이가 아주 즐거워해서 다행이다. 가족 모두 대만족하는 목동 등대유치원(링크는 누군가의 유치원 추천글인데 나도 공감해서 넣어둠) 다니면서 점점 더 명랑해지고 있는데, 이 밝고 활발한 아이가 정말 우리의 유전자에서 나온 게 맞나 싶다. 여담이지만 우리 거주지가 영등포 문래동에서도 역에서 멀리 떨어진 서쪽이라, 집값은 나름 싼 편인데 목동의 교육 인프라는 누릴 수 있다. 참 운이 좋았다. 체중 문제 등 고민도 많았지만 잘 자라주고 있어 감사하다.
요즘은 휴일마다 체험관, 박물관, 키즈카페 등 거의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 하반기에 여은이와 관련된 블로그 글도 많이 썼다. 여은이와 함께 꾸준히 여러 추억을 쌓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새해부터는 평일 학원이나 주말 아이돌보미 등, 우리의 생존과 여은이의 다양한 경험을 위해 ‘돈으로 시간을 사는’ 행위를 좀 더 할 예정이다.
독서
올해, 특히 하반기에 읽은 책 권수가 꽤 많다. 정리하다 보니 너무 길어져 별도 글로 뺐다. → 2023년 독서노트: 통찰, 재미, 영향
새삼스럽게 느낀 바는,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다고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만족스러운 책을 읽는다고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내년부터는 SQ3R을 훨씬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다. 읽고 시각화도 하고, 최소 1개는 행동으로 옮겨보고. 그러지 않으면 책을 읽는 당시에는 만족했어도 삶에 실질적 변화는 없는, 결과적으로 시간낭비가 되는 보여주기식 독서가 되리라.
재무
우연히 트위터에 뜬 템플릿 가져와서 정기 지출을 정리했다. 구독하는 게 상당히 적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종류의 정기 지출까지 정리해보니 꼭 그렇지도 않더라. 구독 중지해둔 3개는 넣지 않았다.
- Youtube Premium: 계기는 내년에 가격이 오르는 것이었지만, 돌이켜보니 유튜브 뮤직은 안 쓰고, 리디북스 듣기 시작하면서 오프라인 저장도 안 쓴다. 결국 광고 제거 혜택만 누리고 있다는 건데, 광고가 없으니 오히려 별생각없이 소모적으로 영상 시청을 하게 되는 것 같아서 끊었다.
- Huberman Preimum: 작년에 큰 도움을 받았던 앤드류 휴버맨 교수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2년간 구독했지만 요즘은 많이 보진 않고, 프리미엄 구독자용 AMA도 안 가고 해서 중단. 나중에 다시 할 수도 있다.
- Rize: AC2에서 알게 된 변성윤님 블로그 글 보고 쓰기 시작한 생산성 앱. 프로모 코드 있길래 일단 1년 구독했고 내년에 자동 연장 안 되게 끊어뒀다. 첫 주 이후로 효용이 아주 크진 않은데 내년에 내가 어떻게 사용하는지 확인하고 재구독 여부를 결정하려고 한다.
투자 쪽으로는 좋은 주식 책을 하나 읽긴 했지만(홍진채의 <주식하는 마음>), 증시가 쭉쭉 떨어지는 가운데 거시경제는 하루 앞도 예측이 안 되고 도메인이나 기업 공부는 하기가 너무 싫었다. 실제로 공부해서 예측이 맞아떨어진다면 재미있긴 했겠으나 시간이 굉장히 아깝게 느껴졌다. 기업 공부 안 한 채 대충 큰 기업에 넣어두니, 떨어져도 올라도 다음 의사결정이 안 되더라. 그래서 주식투자는 완전히 중단하고 토스 통해서 채권으로 포트폴리오 비중을 옮겼다. 신경 거의 안쓰고 세전 5% 개꿀인데? 라고 생각하며. 지금은 현금 + 적금 + 채권 비중이 40%까지 올라왔다.
그래도 주식 책 읽으며 배운 것 중 ‘매매 수수료를 두려워하라’는 잘 실천했다. 안 팔고 버텼던 대형주와 인덱스 펀드가 현 시점에는 한국, 미국 둘 다 증시가 꽤 올라서 수익이 나거나, 원금 회복에 가까워졌다. 다만 Haru Invest 통해서 넣은 비트코인은 회사 문제로 95% 이상 확률로 전손될 것 같다. 뭐 이자율이 워낙 높았던 만큼 어느정도 예상했고, 넣어둔 게 아주 많진 않아서 감당 가능한 손실이라고 본다. 그래도 이 투자를 통해 가상화폐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됐음을 위안 삼자.
2년 전 자산 운용 전문가를 구하는 여정 끝에 불리오(구 불릴레오)와 든든(구 이루다)에 나눠서 예치했던 투자일임은 실효가 없다고 느껴 내년 계약 갱신은 하지 않기로 했다. 수수료는 매년 나가는데 2년간 S&P 500을 거의 한순간도 이기지 못하더라. 연 5%라도 됐으면 그래도 해지는 안했을텐데, 겨우 달러 원 환율 효과로 손해보지 않은 수준이다(기회비용까지 고려히면 당연히 손해고). 내년에 투자일임에서 돌아올 돈을 어디에 넣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가 2025년에 끝나기 때문에 자금 가용 기간이 길지 않다는 게 문제라… 공모주라도 해볼까 싶다.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
교육, 공유회, 발표
하반기에는 AC2에서 멘토로 참여하지는 않았고, 창준님의 패치 교육을 3개 들었다.
- [SmartViz] Smart Visualization : Visualization as a Cognitive Tool (똑똑해지는 시각화 : 인지적 도구로서의 시각화)
- [RFUS] Refactor Your Space (자신의 공간에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NOO 사상을 적용해서 개선하기)
- [CogPrompt] Cognitive Prompting (생성형 AI에게 인지적인 측면에서의 프롬프트를 쓰기)
이중 RFUS는 내 방과 책상을 정리하게 되고 NOO 개념을 좀 더 익힌 정도의 임팩트였지만 다른 2개가 삶에 미친 영향이 어마어마했다. 우선 CogPrompt는 내가 ChatGPT를 다루는 방식을 완전 어나더 레벨로 바꿔주었다.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정립했달까. 앞으로 몇십년간 유익하게 써먹을 스킬을 익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치의 내용은 함께 교육을 들었던 곽근봉님이 정리한 자료가 있으니 참고하시길.
그리고 SmartViz는 완전히 텍스트 타입의 인간이었던 나를 엄청나게 확장시켜준 교육이다. 흔히 내가 자신있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을 '공구상자'라고 표현한다. 이 교육을 듣기 전 내가 가졌던 공구상자가 A
라고 하면, 듣고 나서 (A+1) * 2
로 늘었다. 일단 시각화 자체가 새로운 도구라서(A+1
), 시각화 없이 기존 내 방법만으로는 잘 풀기 어려웠던 문제를 풀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게 기존에 내가 사용하던 모든 도구와 조합되어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준다(*2
). 게임으로 따지면 강화석 같은 존재랄까. 내가 무엇을 하든(인터뷰, 설계, 코드 파악, 디버깅, 발표, 코칭 등) 시각화를 덧붙이니 통찰도 더 많이 생기고 전달도 더 쉬워지는 식이다.
물론 단순히 교육을 듣는 것만으로 큰 변화가 생긴 건 아니다. CogPrompt는 창준님이 내주는 연습문제도 풀고, 개인적으로도 회사에서도 주구장창 써먹었으며, 사내 교육도 했다. SmartViz는 판을 훨씬 더 키웠다. 계기는 AC2에서 ‘함께 했을 때 신이 날 것 같은 사람이랑은 뭘 하든 좋다’는 이야기를 본 것이었다. 충동적으로 안상완님께 연락을 드려 올해 안에 신나는 프로젝트 하나 뭐든지 해보자고 제안드렸고, 의기투합하여 AC2 교육 내용을 (창준님께 허락도 받아) 유료로 재판매하는 EoQ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SmartViz의 오프라인 교육을 열어 두 시즌을 마무리했고, 요즘은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온라인 강의도 조금씩 찍고 있다(위 스크린샷). 이렇게 하니 시각화 활용 능력이 안 늘래야 안 늘 수가 없다. 이 모든 걸 신나는 사람과 함께 하니 질릴 일도 없다. 상완님에게 DM을 날렸던 그 충동적 선택이 올해 최고의 의사결정이었다.
강의뿐 아니라 회사 안팎에서 공유회도 많이 했다. 특히 아래 3개 공유회는 Figjam으로 시각화하면서 진행했는데 사람들의 참여도와 이해도가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고 느꼈다. 사실 이것들 모두 블로그 글감이기도 하다. 원래 ‘피드백 잘 받아 잘 써먹는 방법’을 2023년이 끝나기 전에 쓰려고 했는데 길어져서 마무리를 못하고 대신 지금 이 회고를 작성하고 있다.
- 피드백 잘 받아 잘 써먹는 방법 (feat. 저자 워크숍)
- PARA Method 소개
- Premortem 잘 하는 방법
안타까운 점은 이 모든 변화가 나의 첫 대규모 대중 발표였던 인프콘 이후였다는 것이다. 인프콘은 자료는 아주 충실했다고 자부하지만, 텍스트가 너무 많았고 청자를 충분히 감안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발표’로서의 질은 높지 않았다. 발표 준비 과정과 아쉬움 모두 회고에 열심히 써놨으니 넘어가자. 이제는 발표를 한번 해보기도 했고, 시각화라는 무기와 함께 EoQ를 통해 오프라인 강의와 온라인 강의 경험도 쌓고 있으니 훨씬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글쓰기
하반기에는 블로그에 이 글 포함 14개를 썼다(7월 3개, 8월 5개, 9월 3개, 10월 1개, 11월 1개, 12월 2개). 전반기에 25개였으니 많이 줄어들었다. 전반기와 마찬가지로 쓰고 싶은 소재는 엄청 많은데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효은 탄생, 인프콘 준비, EoQ, 회사 일 등 이유는 많지만 어찌됐든 간에 목표했던 50개를 채우지 못해 아쉽다. 인프콘 발표를 글로 옮기겠다는 결심도 절반밖에 지키지 못했고.
글의 양은 부족했지만 질에는 만족한다. SmartViz 이후로 대부분의 블로그 글에 시각화를 집어넣고 있기도 하고, 내 삶 안에서 나온 재료(육아, 인프콘, 프론트엔드)가 바깥의 재료(연구논문, ChatGPT)와 맛있게 버무려지기도 했다. 원래 지녔던 ‘나 자신을 위한, 진정성 있는 글을 쓰자’는 모토에 ‘시각화로 글의 이해를 돕자’와 ‘근거 기반으로 글을 쓰자’가 더해진 것이다. 좋은 소재를 10개쯤 쟁여뒀으니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 ㅠㅠ
새해에는 조금 색다른 시도도 해볼까 한다. 한국어 뉴스레터는 지금처럼 무료 + 비정기적으로 운영하되(하반기 6개 발행), 그동안 블로그에 쌓아둔 양질의 컨텐츠 중 상대적으로 시류를 덜 타면서도 한국에 국한되지 않은 글을 영어로 옮겨 유료로 정기 발행하는 것이다. 플랫폼은 substack을 쓸지 medium을 쓸지 모르겠으나... 비교글을 보니 substack이 더 끌리는데 둘 다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트래픽, 구독자, 돈이 얼마나 될지 미지수지만 내 컨텐츠가 글로벌에서 얼마나 통하는지는 알게 되리라. 재미있겠다.
2023년 하반기 목표 리뷰
직무 목표: 🔴
직무 목표는 프리모르템(계획대로 행동했지만 기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일까)까지 했던 게 무색하게도, 상반기에도 하반기에도 잘 달성하지 못했다. 회사 바깥에서의 성취와 대조적이다. 목표가 계속 바뀌고 팀 구성 및 내 역할도 함께 바뀌는 가운데, 내가 한 일도 충분히 많았고 사내에서 영향력도 크게 행사했지만 결과적으로 맡은 제품이 별로 성장하지 못했다.
왜 잘 안 됐는지 사후 분석은 얼마든지 할 수 있겠으나 어쨌든 중요한 건 새해에 어떻게 다르게 하느냐다. 1월부터는 완전히 기어를 바꿔끼기로 했다. 관리 업무를 줄이고, 자막 에디터 파트를 메인으로 맡아 에러를 줄이며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한다. 내년에는 목표도 더 자주 돌아보고, 회고 때 당당히 🟢을 주고 싶다. 생산성을 폭발시켜보자.
연구 목표: 🟢
Zotero는 요즘 전혀 쓰고 있지 않고(지식 관리 체계는 PARA로 정착했다), ‘매일 유효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1시간 노력하기’라는 습관은 형성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을 준 이유는 ‘글쓰기’ 회고에서도 언급했듯, (매일 1시간 노력은 안하더라도) 유효한 지식을 확인하고 연구하는 자세가 완전히 몸에 배었기 때문이다. 인프콘 준비할 때 사료를 워낙 많이 찾아보기도 했고, 하반기에 발행한 글 대부분도 연구논문 기반이었다. 이것들을 통해 삶의 의문들을 전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해결했으며 주변에도 긍정적 영향을 많이 미쳤다.
따라서 ‘연구’ 키워드는 졸업할 수 있겠는데, 연구를 넘어 삶이 변화하는 단계까지 가려면 좀 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2024년 상반기에는 ‘전이’로 키워드를 바꿔야겠다.
활력 목표 리뷰: 🟢
하반기에 무엇보다도 가장 뿌듯한 건 26주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며 습관 시트를 채웠다는 점이다. 최대 3일까지는 밀려봤는데 어떻게든 다 채워넣었다. 상반기부터 따지면 (초반에는 ‘일기’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매일 기록했으니) 1년 내내 지속한 셈이다. 1년동안 스스로 정한 일일 습관을 유지한게 아마 36년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지 싶다. 어떻게 가능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기록 방식과 기록 대상을 내 삶에 맞춰 바꿔나갔던 게 가장 큰 성공 요인 아닐까. 뭐 단순히 (휴버맨에게 배운) 햇빛과 수면 덕분일 수도 있겠고… 아무튼 이 경험은 내게 굉장히 큰 자산이 되었다.
다만 기록 습관 형성과 별개로 개별 습관의 성취 정도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하나씩 보면:
- 햇빛 쬐기는 초기에는 라이트북과 여은이 등원으로 잘 채웠지만 겨울 되면서 등원 전에 놀이터에서 놀지 않게 되어 점점 점수가 줄었다. 대신 산책이라도 나갔으면 모르겠는데 산책은 6개월간 10번도 안 한 것 같다. 특히 효은이를 새벽에 돌본 날은 아침에 너무 혼미해져서 라이트북도 제대로 못 쓴 날도 많았다.
- 11시 전에 자기는 대체로 잘 지켰지만 역시 효은이 돌보면서는 하루가 언제 끝나고 언제 시작되는지 모르겠더라.
- 운동은 추석(9월 마지막 주)을 기점으로 완전히 습관이 무너졌다. PT도 자주 빠졌고, 집에서도 안하는 날이 많아서 주 2회가 고작이었다. 효은이 돌보면서는 더 안하게 됐다. 확실하게 몸이 점점 더 안좋아지고 있음을 체감한다.
- 운동량이 줄어들면서 생긴 신기한 점 하나. 나는 눈-발 협응이 잘 안 되는 건지 신체 통제력이 떨어지는 건지, 예전부터 발가락을 기둥이나 의자 다리 따위에 자주 부딛혔었다. 시너제틱스에서는 ‘활성화 운동’이라고 배웠던 자세 교정 운동을 열심히 하던 시절에는 발가락 부딛힘이 급격히 줄었는데 요즘 다시 엄청 부딛힌다. 이러다 발가락 한번 부러지겠다 싶을 정도.
- 간헐적 단식과 영양제는 너무너무 쉬워서, 중간부터 목표에서 아예 빼버렸다. 괜히 이것 때문에 달성률은 높아도 뿌듯하지 않은 한 주가 될 것 같았다. 영양제를 0칼로리짜리 Thorn 멀티비타민으로 바꾼 덕에, 매일 아침 신지로이드 먹으면서 같이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된 게 주효했다. 0칼로리여야 간헐적 단식을 깨지 않으면서 아침에 먹으니까.
- 영양제를 빼면서 ‘산책/명상하면서 통찰 얻기’를 추가했는데 이건 잘 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산책이나 명상을 한 날이 그리 많지 않다. 운전하면서 통찰 얻은 날에 0.5점 주면서 표시한 수준.
- 유효한 지식 습득 노력은 비교적 잘 됐다. 습관화가 된 건 아닌데 좀 다른 방식으로 삶에 배었다. 물론 위 ‘연구’ 키워드에도 썼듯 전이 레벨로 가려면 멀었다.
- 소중한 사람들과 유의미한 시간 보내기는 참 잘 정한 지표였는데, 뒤로 갈수록 좀 기계적으로 점수를 매긴 것 같다. 목표를 다시 보니 ‘감사인사’가 중요한 포인트였는데 이걸 까먹고 있었다.
적고 보니 참 부족한 게 많은데 내년에 어떻게 개선할지도 감이 온다. 아무튼 습관일기는 내년에도 계속한다. 세부목표는 많이 바꾸겠지만. 운동과 산책 같은 것들을 훨씬 더 잘 실행하도록 전략을 짜야지. 하루하루를 풍성하게, 뿌듯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로 채워보자.
결산
나는 셀프 평가가 후한 편이다. 자존감이 높다고 해야 하나 긍정 해석을 잘 한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부정적 사건에 대한 기억력이 나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회고를 할 때마다 ‘나 참 많이 자랐구나’ 라고 자평한다. 몇 년 연속으로 이렇게 크게 자라고 있다면, 그 전에는 아주 형편없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싶은데… 몇 년 전 썼던 글을 보면 나름의 통찰이 놀랍도록 잘 담겨있더라. 그렇다면 내가 스스로의 생각보다는 더디게 자라고 있을 수도 있겠고, 당시에는 인상깊었던 경험이 온전히 내 것이 되지 않았을수도 있겠다(독서 회고하면서 새삼 느꼈다). 그래도 블로그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2021년부터는 누적되는 속도가 빠져나가는 속도보다 빨라서, 미미하게나마 점점 밀도 높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글쓰기가 취미라서 다행이다.
한편 다른 취미 2개(즉흥연기, 보드게임)는 오프라인에서 누굴 만나기가 어려운 처지라 전멸해버렸다. 아 보드게임은 한번쯤 했던가..? 내년에는 그래도 조금은 하고 싶은데 욕심이려나. 다둥이 아빠로서 내가 어떤 발버둥을 치게 될지 기대가 된다.